우리 민족의 일상 언어 속에는 늘 '하늘'이 살아 숨 쉽니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지", "하늘의 뜻이다"라며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우리에겐 그 하늘에 대한 구체적인 경전이나 교리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1. 교리는 없으나 '양심'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하늘의 법은 책 속에 기록된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사람의 본성인 '양심' 그 자체가 교리였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움이 없느냐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민초들은 복잡한 교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무엇이 하늘의 뜻이고 사람의 도리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무의식이 우리네 속담과 말속에 고스란히 박혀 있습니다.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물은 골로 흐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진인사대천명
인명은 재천
천심이 곧 민심이다
2. 신과 같은 존재, 우리 아이들
이러한 관점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거의 신적인 존재로 대우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때 묻지 않은 신의 마음, 즉 가장 깨끗하고 선한 '양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 속에는, 돈이나 짐승보다 고귀한 인간의 존엄성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는 선조들의 단단한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하늘이 내린 목숨이기에 '인명은 재천(人命在天)'이라 하며 생명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3. 세상 무엇보다 고귀한 '사람'
우리는 인간의 고귀함을 세상 그 무엇보다 우선시했습니다. 신(하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가장 선한 본성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에, '천심이 곧 민심'이라 여기며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것을 곧 하늘을 섬기는 일로 보았습니다.(인내천 사상)
결국 우리 민족에게 종교란 거창한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깨끗한 양심을 지키고, '하늘 보고 침 뱉기' 같은 어리석은 짓을 경계하며, 사람 귀한 줄 알고 서로 어울려 사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신앙이었습니다.
기록된 교리가 없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강력했던 우리의 정신. 오늘도 내 안의 '하늘(양심)'에 부끄럽지 않은지 스스로 물어봅니다. 신과 같이 맑은 아이들의 눈망울을 닮은 그 마음이 바로 우리 민족의 진정한 근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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